대구텍의 긴 역사에 대한 짧은 이야기


발전의 한세기


100년전 강원도의 한 작은 시골 마을에서 상동 중석 광산이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100년 후, 이 곳에 뿌려진 작은
씨앗의 성공담을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1952년 9월 대한중석 설립

한국전쟁 이후 모든 것이 파괴된 1950년대 대한중석은 당시
대한민국 전체 수출액의 56퍼센트를 차지하는 165만달러
가량의 중석을 수출했습니다. 1970년대 대한중석은
대한민국 경제의 기적을 이루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합니다.
1959년에서 1979년까지 대한중석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습니다.

1960년대 초 런던, 뉴욕, 도쿄에 해외지사를 설립하였습니다. 또 1972년 APT(화학처리)공장을 준공하고 중석에 대한 가치사슬 체계를 갖추어
대한중석의 수준을 더 높이게 됩니다. 1960년대 대한중석은 대한민국의 3대 외화 획득 기업 중 하나였으며 그 공로로 4개년 동안 수출의 날
표창을 수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국가발전의 불쏘시개와 같은 중요한 역할을 지속적으로 하였습니다.

1970년대 대한중석은 새로운 해외 지사들을 설립하며 세계에 발자국을 넓혀갑니다. 1974년 현재 본사가 위치한 대구에 제조공장을
세웠습니다. 1968년 대한중석은 대한민국 정부와 합작으로 정부 75%와 대한중석 25%의 지분을 투자하여 포항제철을 설립하게
됩니다. 새로운 철강회사의 수장은 박태준 전 대한중석 사장이 임명되어 키를 잡았고 2014년 포스코는 세계 5대 철강업체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1980년대 한국의 대기업들은 중공업, 자동차, 전자, 반도체 등에 막대한 투자를 하여 기반 산업을 다양화 하였습니다. 오늘날 국가의 가장
가치 있는 존재인 국민과 함께 만든 최첨단의 제품들은 한국을 넘어 세계를 향해 진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산업계의 변화에 따라
대한중석은 막대한 투자를 단행하여 1981년 특수 코팅층 개발 프로젝트를 완료하였으며, 1985년 세라믹과 금속을 결합하여 절삭력을
높인 서멧 인서트를 개발하였습니다. 이후 산업 제품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여 1988년 철강산업에 사용되는 초경롤 생산공장,
1989년에는 건설산업에 사용되는 텅스텐 와이어 공장을 신설하였습니다.

1991년 대한중석은 국내와 해외시장을 겨냥하여 한단계 더 성장하며 세라믹 인서트를 생산하기 시작하였고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대구텍 절삭공구의 진화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많은 국가들이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을 때 대한중석은 세계에서 가장 큰 절삭 공구 회사 중에 하나인 이스카의 모기업인 IMC 그룹에 인수되어 사명을
대구텍으로 바꾸게 됩니다. 그리하여 업계에서 가장 오래된 회사에서 가장 젊은 회사로 변모하고 생산설비를 새로 정비하여 세계시장을
향한 길을 열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대구텍은 사람과 비즈니스에서 최고 품질의 절삭 공구 및 산업 제품의 일부를 만들 최신 제조 공정에 투자함으로써 글로벌
존재로서의 확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또한 최고 품질의 절삭공구와 산업 제품을 만들기 위해 인력과 최신 공정에 투자하여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있습니다.

대구텍 사람들

1978년 대한중석에 입사한 대구텍 류재원 부사장은 당시 대한민국 경제가 두배 성장하는데 회사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소회합니다.
“대한중석과 소수의 회사가 해외수출을 통해 국가 경제성장을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대한중석은 세계 유일의 일관 초경제조사로써 높은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판매 수익은 낮은 편이었습니다. 류부사장은 당시
절삭공구시장에 진입하는 것이 필수불가결한 선택이었다고 기억합니다. “1974년 대구 공장을 짓고, 1976년부터 절삭공구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한중석은 자력으로 절삭공구 기술을 개발하였고 마침내1980년대부터 전성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스카는 대한중석 발전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이스라엘 회사는 1970년대부터 대한중석과 거래하고 있었으며
대한중석을 인수할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대한중석 출신으로 현재 대구텍 연구개발의 책임을 맡고 있는
최창희 이사는 1998년의 인수에 대해 이렇게 평가합니다. “IMC그룹에 인수된 후 대구텍은 진정으로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최이사는 수출액이 2005년 1억달러에서 2012년 3억달러로 증가한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이스카 브랜드의 세계화 과정을
지켜보면서 “우리 브랜드를 개선할 새로운 방법을 많이 배웠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회사가 지속적인 성장을 한 것은 국내 대기업에 대한 매출 강화, 거점 국가 진입으로 해외시장 확대의 발판 마련 등의 요인들이
있으며 이 것이 투자자들의 주의를 끌었습니다. 한 투자자가 IMC 그룹과 대구텍, 이스카, 잉가솔, 탕가로이, 그 외 계열사들의
엄청한 성장 잠재력을 지켜보았으며, 그는 바로 버크셔 헤서웨이사의 워런 버핏이었고, 2006년 IMC 그룹의 지분의 80%를
인수하게 됩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고 2013년 5월 나머지 20%를 인수하여 대구텍은 비로써 완전한 버크셔 헤서웨이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류재원 부사장은 거대기업의 일원이 되는 것이 경기 침체 시 위기를 잘 극복하고 변화하는 절삭공구 시장에
적응하는 유연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대구에 미치는 영향

류부사장은 대구텍의 본사와 생산 시설이 대구의 외곽에 위치하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1974년으로 돌아가 보면 대한중석은 상동광산과 더불어 다른
광산이 위치한 대구를 생산시설의 입지로 결정하였습니다.”
IMC그룹은 각국 자회사의 본사가 생산시설에 인접해 있어야
한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1998년에 대한중석을 인수할 때 서울본사 사옥은 인수하지 않았으며 본사는 대구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대구텍은 대구지역 산업계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단단하게 뿌리내렸습니다. 2012년 4월 대구본사에 제2공장
기공식을 통해 새롭게 투자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하나의 광산이 세계적인 절삭공구 및 산업제품 생산 공급 업체로 변모했습니다. 대한중석은 대한민국 경제의 기적의 순간을 여는 열쇠와 같은 값진 역할을 했고 국민과 국가가 함께 할 때
‘할 수 있다’는 대한민국 정신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대구텍은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대구와 대한민국 경제계의 활력이 되고 앞으로도 더 많은
투자를 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 것이 바로 다음 백년을 향한 대구텍의 결연한 다짐입니다.